2014년 9월 26일 금요일

마르지 않는 우물>> 하나님의 교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우물은 대구 동천동과 논산 마전리에 있는데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조상들은 수천 년 전부터 이미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자연이 내려주는 비와 강물에 의존하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물을 얻는 것이 필요했고, 많은 노력 끝에 우물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조상들은 집을 짓기 전에 가장 먼저 식수가 확보되는지의 여부를 판단하여 우물을 판 후 주변에 집을 지었다. 그래서 우물은 마을의 중심이 되곤 했다. 아낙네들의 빨래터로서도 손색이 없었던 우물은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고, 때로는 지나가는 나그네가 물 한 바가지를 얻어 마시는 쉼터가 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우물이 마르거나 없으면 마을이나 관아를 옮겼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선조들은 우물이 마르지 않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우물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또, 용왕이 머무르는 곳이 우물이라든지, 백제가 망할 때 우물이 핏빛으로 변했다는 등 우물에 대한 설화가 많은 것도 그만큼 우물에 대한 관심이 컸고, 우물이 마르지 않기를 바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우물제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고대 로마, 바빌로니아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결국 마르지 않는 우물에 대한 염원은 모든 인류의 간절한 바람이었던 것이다.

성경에서도 우물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아브라함 때 팠던 우물부터 모세가 파라오를 피해 미디안 땅에 머물며 쉬었던 우물, 다윗 시대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었던 우물 등 오래전부터 우물은 삶의 쉼터이자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창세기 26:18, 출애굽기 2:5, 사무엘하 23:15).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전도하시며 유다에서 갈릴리 지역으로 이동하던 중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를 지나게 되었다. 그곳에 야곱의 우물이 있는 것을 보시고 잠시 우물 곁에 쉬는 중 물 긷는 여인에게 물 한 그릇을 부탁하셨다(요한복음 4:3~7).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근원과도 같은 우물을 인용하여 영혼의 구원을 위한 생명의 물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우물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13~14)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물은 단순히 우물에서 길어 먹는 물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물이다.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우물에서 생명의 물을 얻으라는 말씀도 하나님의 생명수로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생명수란 우리 영혼이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 갈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이다(아모스 8:11).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잠언 5:15)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구나 (아가 4:12~15)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이사야 12:3~4)

성부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의 우물에서 영생하는 물, 생명수를 주셨다. 성자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생명수를 주셨다. 성령시대에는 우리 영혼의 생명을 영원히 이어줄 생명수를 누가 주실까?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지금 이 시대에는 성령과 신부,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생명수를 주신다. 이 시대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과 신부께로 가야만 한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성령과 신부가 계시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진정한 영적 우물 , 구원의 우물인 생명수 받고
천국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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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2일 금요일

마음에 기록한 법>>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교회에서 지키는 법은 무엇일까?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예레미야 31:31~33)

구약성경의 이 말씀은 날이 이를 때, 즉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시간이 이르렀 때 세워주실 새로운 언약, 새 언약에 대한 기록이다. 새 언약이 굳이 필요한 이유는 옛 언약인 구약의 한계성 때문이다.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히브리서 8:7~8)

첫 언약은 옛 언약인 구약을 말한다. 이 언약이 흠이 있어 하나님께서는 굳이 둘째 것인 새 언약을 주셨다. 사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이 흠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옛 언약이 사람인 우리가 지켜 구원받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래서 첫 언약을 흠이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을 위해 새롭게 세워주신 둘째 언약, 새 언약은 말 그대로 완전무결하다. 이는 새 언약을 ‘마음에 기록했다’는 말씀으로 알 수 있다. 돌비에 기록했던 옛 언약은 유한했다. 돌이라는 물질에 기록된 것이기에 깨어지면 그만이다. 하지만 마음에 기록한 새 언약은 영원하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기록한 영원한 언약인 새 언약을 지키는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새 언약을 지키는 사람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새 언약이 마음에 기록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니, 새 언약이 마음에 기록된 것을 우리는 왜 모를까. 이를 두고 사도 바울은 우리 마음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고린도후서 3:12~16)

이 말씀 가운데 모세가 썼던 수건은 면박, 즉 얼굴을 가리는 데 사용한 수건이다. 사도 바울은 이 면박이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볼 때 그 마음에 덮여 있어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그 면박이 벗어질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우리 마음을 덮고 있는 면박 때문에 우리 마음에 주신 새 언약을 올바로 깨닫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을까.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 … 너희가 만일 여호와께 돌아오면 너희 형제와 너희 자녀가 사로잡은 자에게서 자비를 입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 (역대하 30:1~9)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절기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남 유다뿐 아니라 북 이스라엘에까지 보발꾼을 보냈다. 보발꾼이 북 이스라엘에 당도해 하나님의 유월절을 지키라 하며 그것이 곧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임을 알렸다. 즉,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방법은 유월절을 지키는 것인데, 이것이 곧 우리 마음에 덮여 있는 면박을 제거할 수 있는 길이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신 새 언약을 온전히 알아볼 수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가 유월절을 지켜야 마음을 가리고 있는 면박과 마음에 덮인 휘장을 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25:6~8)

사망을 멸하는 포도주는 성경에서 오직 유월절뿐이다. 유월절을 ‘오래 저장했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새로운 약속을 하시며 세워주신 이후,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 유월절이 폐지되었고 1,600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았던 유월절이 회복되므로 모든 민족의 가려진 면박과 덮인 휘장이 없어질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비로소 우리의 마음에 두신 새 언약의 법도가 무엇인지 드러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하늘의 법도. 오직 마음에 기록되어, 마음에 덮여 있는 면박을 제하지 않고는 깨달을 수 없는 두 번째 언약. 그것은 유월절을 지켜야만 올바로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을 ‘새 언약’이라고 단언하셨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20)

여기서 ‘너희’는 새 언약인 유월절을 지키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유월절을 지켜야만 마침내 드러나는 하나님의 법, 새 언약. 마음에 드리워진 어둠의 장막을 걷어버리고 구원의 밝은 빛으로 인도하는 새 언약 유월절. 그래서 유월절은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영생의 길임을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했다.

그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이사야 25:9)

출처:패스티브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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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1일 월요일

수박고르는법? >>>참진리교회는??>>하나님의교회



요즘 같은 무더위에 가장 인기 있는 과채는 단연 수박일 것이다.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 수박은 수분을 보충해주는 공급원으로 제격이다. 찬 성질을 갖고 있어 몸의 열기를 내려주기 때문에 삼복더위를 이겨내려면 먹어주는 것이 좋다.

효능도 뛰어나다. 붉은 과육에는 항암물질인 라이코펜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암예방은 물론 암세포가 전이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흰 속껍질에 들어 있는 시트룰린은 혈압을 낮추고 몸속 과다한 수분을 배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과육을 먹은 후 흰 속껍질을 도려내 찬거리로 활용하면 고혈압, 신장병 환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거리가 되는 것이다. 또, 검은 씨에 함유되어 있는 우수한 단백질은 동맥경화를 막아준다. 과육을 먹을 때 뱉지 말고 씹어먹는 것이 좋다.

이렇듯, 맛있는 수박을 먹으면 맛과 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속을 알 수 없으니 맛있는 수박을 사기란 쉽지가 않다. 예전에는 과일가게 상인들이 삼각뿔 형태로 과육을 잘라주어 시식을 해본 후에 구입을 했기 때문에 실패하는 일이 없었는데, 요즘은 웬일인지 과일가게에 가도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비파괴 당도검사를 마치고 시장에 나오기 때문이다. 소비자로서는 일단 수박껍질에 부착된 ‘당도 보장’, ‘고당도’, ‘꿀수박’, ‘당도 선별 수박’ 등 품질인증 스티커를 믿고 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100% 정확하지만은 않다.

품질인증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지 않은 수박을 파는 경우도 있다. 많은 소비자들은 그게 그거 같은 수많은 수박 앞에서 고민하다 상인에게 맛있는 걸로 골라달라고 선택권을 넘기기도 한다. 상인은 십중팔구는 수박 몇 개를 노크하듯 두드려보고 골라주며 맛있을 거라고 호언장담한다. 하지만 막상 집에 가지고 와서 먹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결국 맛있게 잘 익은 수박인지 아닌지는 수박에 대한 지식을 익혀서 직접 선택하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과연 수박을 고를 때는 무엇을 따져봐야 할까. 몇 가지 간단한 지식만 있으면 된다.

수박은 호랑이와 얼룩말 같은 화려한 줄무늬를 갖고 있다. 바로 이 암녹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선명하고 규칙적인지 확인한다. 빛깔이 곱다는 건 햇빛을 충분히 골고루 받았다는 증거이자, 당도가 높다는 증거다. 그리고, 지구의 북극점과 남극점처럼 겉껍질의 꼭지 반대편에 자리한 배꼽을 본다. 배꼽은 꽃이 떨어진 자리다. 배꼽이 작을수록 수분이 많고 당도가 높다고 한다. 또 한 가지는 유통되는 과정에서 닦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겉껍질에 하얀 분이 있다면 그것은 당도가 높은 것이라고 한다.

수박을 고를 때 대부분 가장 먼저 확인해보는 것이 소리다. 두드렸을 때 소리가 맑은 것이 잘 익은 수박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고수가 아니면 큰 차이를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하는 편이 낫다.

소리 다음으로 많이 확인하는 부분이 꼭지다. 농부는 수박을 수확할 때 T자형으로 잘라 시장에 내놓는다. 소비자들이 꼭지가 달려 있는 수박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어느 지역의 농업기술원의 연구에 따르면 꼭지가 맛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 또, 꼭지가 오히려 수박의 맛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수확할 때 꼭지를 함께 자르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꼭지(줄기)가 말라가면서 살기 위해 몸통(과육)의 수분과 영양분을 빼앗아간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소비자 입장에서 꼭지가 달려 있는 수박을 사는 경우라면 싱싱한 상태가 속도 싱싱하리라는 것만 염두에 두면 될 것 같다.

수박 하나도 이토록 깐깐하게 따져보고 선택해야 후회가 없다. 하물며 영원한 삶과 직결된 교회는 어떠하겠는가. 두 집 건너 하나 있는 수많은 교회들 중 도대체 어느 교회가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고 구원으로 인도할 교회일까. 과일가게에 진열돼 있는 수박들처럼 그게 그거 같다. 수박의 품질인증 스티커처럼 다들 ‘복음’과 ‘말씀’을 강조하며 하나님께로부터 인증을 받은 교회라고 자처하고 있다. 문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거짓 목자들도 양의 탈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내가 직접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익히고, 성경에 입각해 따져보고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몇 가지 성경 상식만 알고 있으면 된다.

먼저, 일주일에 한 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인지 확인한다. 안식일은 십계명의 넷째계명이자 예수님과 사도들도 지켰던 중요한 규례다(출애굽기 20:8, 사도행전 18:4). 그리고 유월절을 비롯한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지 알아본다. 특히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기를 간절히 원하신 절기 중 하나이며 바울도 유월절을 소중하게 지켰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15)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유월절)을 지키되 (고린도전서 5:7~8)

이밖에도 많은 성경 지식들이 있지만 예배일만 따져보고도 우리의 영혼에 맛있는 양식을 먹여주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줄 완전한 교회를 찾을 수 있다. 수박을 잘못 고르면 교환을 하거나 달콤한 음료수로 화채를 만들어 먹거나 그마저도 귀찮으면 며칠 맛없는 수박을 먹으면 그만이다. 교회를 잘못 골랐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성경대로 안식일과 유월절 등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교회를 선택하면 된다. 만약 잘못 골랐는데도 불구하고 그 교회를 고집한다면 구원은커녕 슬피 울며 뼈저린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출처: 패스티브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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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6일 수요일

하나님의 교회는? >> 알곡과 가라지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에는 수많은 교회와 교파가 있다. 모두 자신들의 교회가 정통교회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 많은 교회 중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정통교회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정통성을 지닌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가 그것이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24~30)

주인의 농사를 훼방하기 위해 원수가 뿌린 것이 가라지다. 가라지는 곡식과 모습이 매우 흡사하다. 해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의 구별은 어렵다. 이 점 때문에 비유 속의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했다. 주인은 일꾼들에게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두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그 밭은 온통 번식력이 강한 가라지 밭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가라지는 아무리 많아도 잡초다. 결국 추수 때 가라지는 거두어 불사르게 된다.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은 같은 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13:36~43)

예수님께서는 알곡과 가라지의 가장 큰 특징으로 ‘불법’을 꼽으셨다. 불법을 행하는 교회는 가라지 교회이며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교회는 알곡 교회다. 하지만 비유 속에서 말씀하셨듯이 세상에는 알곡보다는 가라지가 더 많다. 이는 초림 예수님께서 세워주셨던 하나님의 계명들이 예수님 십자가 이후 무참히 훼파되므로 온 세상에는 불법을 행하는 가라지 즉, 거짓 교회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농부가 원하는 것은 알곡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불법을 행하는 자들도 겉으로는 하나님의 선지자 노릇을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행했다. 예수님의 비유처럼 겉으로는 절대 판단할 수 없는 것이 가라지다. 하지만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수 있다고 하셨다(마태복음 7:16). 그들의 불법적인 행위가 그들이 가라지라는 것을 증거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겉으로는 모습이 비슷해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가라지로서 절대 천국에 갈 수 없다. 그리고 결국 가라지는 곳간에 들어가지 못하고 풀무불에 던져지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세상의 많은 교회 중 어느 교회가 가라지 교회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알곡이 뿌려졌던 사도시대의 신앙에 대해 조명해봐야 한다. 성경에서는 우리들이 구원받으려면 불법의 씨가 뿌려지기 이전의 신앙으로 돌아가서 예수님과 사도들이 행한 초대교회의 신앙과 진리를 고수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에베소서 2:20)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수님께 직접 듣고 배운 사도들의 가르침대로 행한 사도시대의 진리가 완전한 진리이므로 알곡이 되기 위해선 이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규례로 삼으시고 지키는 본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그 가르침대로 사도들도 안식일을 지켰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사도행전 17:2)

이로 보건대 안식일은 가라지가 뿌려지기 이전의 순수한 하나님의 진리다. 이와 반대로 오늘날 기성교단이 지키고 있는 일요일은 사도시대 이후 덧뿌려진 가라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등 하나님의 절기 또한 가라지가 뿌려지기 전 예수님과 사도들이 지켜온 하나님의 법이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6:17~28)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사도행전 2:1~4)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7:2, 37~39)

그러나 유월절은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폐지됐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기들이 하나 둘 사라져 온 세상은 가라지 천지가 되고 말았다. AD 321년 일요일 휴업령, AD 354년 성탄절 도입, AD 568년 십자가 숭배, 1798년 추수감사절 등이 그 증거다. 이와 함께 여성도의 머리수건 문제도 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 (고린도전서 11:1~6)

예배드릴 때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남자는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이 초대교회에서 지킨 하나님의 진리다. 이 또한 가라지가 뿌려지므로 변개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알곡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를 모두 지키는 곳이다. 가라지인 불법이 뿌려지기 이전의 순수한 진리를 지키는 성도들이 있는 곳이다. 가라지가 만연한 이 시대 우리가 찾아야 하는 알곡 교회는 하나님의 이 모든 진리를 고수하고 있는 교회다. 이 교회가 순수한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는 정통교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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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0일 화요일

영광중에 오신다는 것!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 ‘영광’의 사전적인 의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광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시상식에서 수상했을 때,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했을 때, 유명하거나 권위 있는 사람을 직접 만나게 되었을 때,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돌릴 때가 그렇다. 이렇듯 영광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는 그 시간이 감동적이고, 벅차고, 아름다움이 가득한 때일 것이다.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계시고, 우리에게 오실 때도 영광 중에 나타나실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40:3~5)

어쩌면 영광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영광 중에 나타나실 것이란 예언은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성취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너무나도 평범한 육체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다. 영광이란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라고 할 만큼 평범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보잘것없는 육체로 오신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이 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누가복음 3:4~6)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예언이다. 겉모습이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바로 영광 그 자체라는 것이다. 다시 오신다는 재림 예수님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그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21:27~28)

구름을 타고 큰 영광으로 오실 거라는 예언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은 하늘만을 바라보며 뭔가 크고 웅장하고 빛나는 모습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2천 년 전과 마찬가지로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다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두 번째 오시는 그리스도께서도 영광 중에 오신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빛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의 모습일지라도 말이다. 영광 중에 오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절기 지키는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곳에 나타나신다(이사야 33:20).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시편 102:16)

사람이 생각하는 겉모습의 영광이 보는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육체쓰고 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가지고 오신 진리의 영광을 깨닫는 사람에게 구원의 축복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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