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8일 수요일

어머니의 혈통 >>하나님의 교회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왕 제 십팔 년에 아비얌이 유다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서 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열왕기상 15:1~2)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 이십 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열왕기상 15:9~10)

여호사밧이 왕이 될 때에 나이 삼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수바라 실히의 딸이더라 (열왕기상 22:42)

아하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더라 (열왕기하 8:26)

예후의 칠 년에 요아스가 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열왕기하 12:1)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니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호앗단이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열왕기하 14:1~2)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이십칠 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니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륙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골리야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열왕기하 15:1~2)

이스라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 이 년에 유다 왕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니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륙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 (열왕기하 15:32~33)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삼 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비라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열왕기하 18:1~2)

이스라엘 왕조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기를 기점으로 분열왕국의 길을 걷는다. 위에 언급된 왕조는 남 유다를 통치하던 왕들의 일부다. 그런데 이 성경 말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유다 왕들에 대한 기록 뒤에 항상 왕들의 모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는 모계의 혈통이 왕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임금으로 등극하는 세자에 대해 누구의 소생인지가 무척 중요했다. 만일 중전의 소생이 아닐 경우 왕위에 오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었다.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이나 반정 등을 제외하고 왕위에 오르는 일 순위는 무조건 중전의 소생이어야 했다. 이처럼 이스라엘에도 왕손을 구별하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혈통’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해 모계의 혈통을 증명해야 했다. 모계의 혈통이 이스라엘 민족이라야 왕이 되는 최우선적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래서 성경 열왕기에서는 유다 왕들이 순수한 혈통을 입증하기 위해 모친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었다. 이것은 우리 영혼에도 적용된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베드로전서 2: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셨다. 그렇다면 분명 하늘 어머니의 혈통을 이어 받아야 한다. 하늘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고서는 결단코 하나님의 자녀도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수많은 페이지 속에 열왕들에 대해 설명하시며 그들의 모친을 언급하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 한다면 반드시 하늘 어머니의 혈통을 이어받아야 한다.

하늘 어머니의 존재도 모르고,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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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0일 화요일

영광중에 오신다는 것!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 ‘영광’의 사전적인 의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광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시상식에서 수상했을 때,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했을 때, 유명하거나 권위 있는 사람을 직접 만나게 되었을 때,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돌릴 때가 그렇다. 이렇듯 영광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는 그 시간이 감동적이고, 벅차고, 아름다움이 가득한 때일 것이다.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계시고, 우리에게 오실 때도 영광 중에 나타나실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40:3~5)

어쩌면 영광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영광 중에 나타나실 것이란 예언은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성취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너무나도 평범한 육체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다. 영광이란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라고 할 만큼 평범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보잘것없는 육체로 오신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이 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누가복음 3:4~6)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예언이다. 겉모습이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바로 영광 그 자체라는 것이다. 다시 오신다는 재림 예수님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그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21:27~28)

구름을 타고 큰 영광으로 오실 거라는 예언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은 하늘만을 바라보며 뭔가 크고 웅장하고 빛나는 모습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2천 년 전과 마찬가지로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다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두 번째 오시는 그리스도께서도 영광 중에 오신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빛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의 모습일지라도 말이다. 영광 중에 오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절기 지키는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곳에 나타나신다(이사야 33:20).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시편 102:16)

사람이 생각하는 겉모습의 영광이 보는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육체쓰고 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가지고 오신 진리의 영광을 깨닫는 사람에게 구원의 축복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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